
삼화의료원 응급실
자정을 막 넘긴 시각, 응급실은 평소처럼 야간 근무가 이어지고 있었다.
술에 취한 환자 몇 명, 가벼운 부상을 입은 사람이 오갔을 뿐, 분위기는 대체로 조용했다.
하지만 30분 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증상을 보이는 젊은 환자가 도착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기쁨의 미소가 아닌, 어딘가 섬뜩하고 부자연스러운 미소였다.
그리고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901번째 밤…”
응급 검사 결과, 독성 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원인을 알 수 없어 당황하면서도 추가 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두 번째 환자가 도착했다.
“또 들어옵니다! 또 한 명이에요!”
자동문이 열리며, 세 번째 환자가 실려 들어왔다.
간호사 윤지는 앞선 두 명의 환자 처리로 분주한 와중에, 또 한 명이 늘어났다는 소식에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라고요? 전부 똑같이 웃고 있다고요?”
구급대원은 숨을 고르며 짧게 답했다.
“신촌 클럽 근처에서 쓰러졌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닐 수도 있어요. 비슷한 신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거든요.”
윤지는 새로 들어온 환자의 상태를 재빨리 확인했다. 초점 없는 눈동자, 굳은 표정, 희미한 중얼거림.
“901번째 밤…”
환자들의 생체 신호는 정상이었지만, 누구도 의사나 간호사의 질문에 반응하지 않았고, 셋 모두가 같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레지던트 박도윤은 모니터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수치는 다 정상이네요. 그런데 왜 계속 웃기만 하는 거죠? 신종 약물이라면 뭔가 나와야 정상인데 말이죠.”
간호사들도 불안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때, 관찰실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 한 명이 몸을 떨더니, 낮고 기괴한 소리로 외쳤다.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아… 그런데 웃고 있어… 웃고 있어…”
담당 간호사가 급히 진정제를 투여했지만,
환자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간호사 김세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건… 사람의 표정이라고 보기 힘들어요. 마치 웃는 가면 같아요.”
경찰의 등장
잠시 후, 병원 정문에 경찰차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남경찰서 마약수사팀 형사 두 명이 응급실로 들어섰고, 이미 비슷한 증상의 환자 신고가 여러 건 접수되었다고 전했다.
“‘톡시드’라는 이름의 신종 약물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는 제보가 있습니다. 혈액 검사엔 안 잡히지만, 증상은 상당히 이상하다고 합니다.”
의사들은 답답한 듯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아직 뭐라고 확신할 수 없어요. 그저 환자들이 ‘901번째 밤’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웃고 있을 뿐입니다.”
한 형사가 관찰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세 명 모두 똑같이 웃고 있다니… 흔한 일이 아니네요.”
하임의 이름이 언급되다
응급실 책임자인 윤정민 과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간호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임 선생님을 불러주세요. 지금 당장.”
간호사들은 놀란 눈빛을 교환했다.
하임——정부 주도 정신의학 프로젝트에서 특수 중독 사례를 연구하던 인물.
최근에는 병원 내에서도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분이 뭔가 아실까요?” “예전에 ‘901번째 밤’이라는 보고서를 썼다고 들었어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분밖에 없을지도 몰라요.”
윤정민 과장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대처할 방법도 없고, 환자는 계속 늘어나니 더 늦기 전에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순간, 환자 한 명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셰에라자드… 이야기를 멈췄어… 그런데 왜 우린 계속 웃는 거지…?”
간호사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통증 반응도 없던 환자들이 무언가를 중얼대고 있다는 사실에, 김세나는 손끝을 떨며 맥박을 다시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또 다른 환자
그 사이, 또 한 명의 환자가 구급차로 이송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곳곳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에 대한 신고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병상이 모자라겠어요.” “이유가 뭘까요. 갑자기 이런 사람들이 한꺼번에 생기다니…”
의료진은 혼란에 빠졌다.
누군가는 신종 약물이라 주장했고, 누군가는 집단 심리현상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901번째 밤’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임의 도착
잠시 후, 간호사 윤지가 급히 들어왔다.
“과장님, 하임 선생님 연락됐어요! 병원 연구동에 계셨고, 지금 바로 오신다고 합니다.”
윤정민 과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서 안내하세요.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모두 ‘901번째 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임 선생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경찰도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톡시드와, 천일야화의 누락된 기록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을지 모른다 해도,
지금으로선 하임의 의견을 듣는 것이 유일한 단서였다.
딩!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병원 복도에 울려 퍼졌다.
문이 열리자마자, 굳은 표정의 하임이 걸어나왔다.
그가 마주한 것은 미소로 일그러진 얼굴들,
그리고 “901번째 밤”이라는 불길한 중얼거림이 가득한 응급실이었다.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가 하임이 이 밤의 실마리를 풀어내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이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