سِجِلّ المائة يوم المَخْفِيّ

금지된 이야기가 깨어났다

딩!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병원 복도에 울려 퍼졌다.
곧 하임이 굳은 표정으로 문이 열리자마자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교적 잠잠했던 이곳은, 이제는 기묘한 미소와 “901번째 밤”이라는 중얼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하임을 보자마자
안도와 긴장감이 섞인 눈빛으로 달려왔다.

“하임 선생님, 기다렸습니다.”


윤정민 과장이 바삐 다가오며 상황을 전했다.

“SNS나 경찰을 통해 ‘톡시드(Toxid)’라는 정체불명의 약물이 퍼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GHB, 케타민, 펜타닐, 코카인 등 주요 마약성분을 전부 패널에 걸어 검사했는데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윤 과장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901번째 밤’을 계속 중얼거리고,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멈추지 않습니다. 진정제도 듣질 않고… 도대체 이건 뭔지 모르겠습니다.”

하임은 차분히 응답했다.

“톡시드는 원래 화학 구조가 확인되지 않은 약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 검출 방식으로는 걸리지 않을 수도 있죠.”

윤 과장은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도대체 이게 약물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정신 감염인지… 분간조차 어렵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901번째 밤’을 반복 중이라는 점이 정말 이상합니다.”

하임은 잠시 눈을 감고, 오래전 기록을 떠올렸다.

“이쪽으로 안내해 주시죠.”

레지던트 박도윤이 그녀를 임시 격리 구역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이상한 미소를 띤 젊은 환자들이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 눈을 뜬 채 무표정한 얼굴로 입만 웃고 있는 환자.
  •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며 “901번째 밤… 셰에라자드…”를 중얼대는 환자.
  • 간헐적으로 떨며 “미소가… 계속 와요…”라고 말하는 환자.

그중 하나, 강도현(28세)이라 적힌 차트가 눈에 들어왔다.

“길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손에 ‘Toxid’라는 라벨이 붙은 유리병을 쥐고 있었습니다. 검사에선 아무 성분도 검출되지 않았고, 현재는 혼수 상태에 가깝지만 중얼거림은 계속됩니다.”

하임은 잠시 그 이름에 시선을 멈췄다.

“산소포화도 96, 맥박 82, 체온 정상 범위입니다. 하지만 미소가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근육이 기억하는 듯이 말이죠.”

그 순간, 강도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희미한 눈빛으로 하임을 응시하며 입술을 떨었다.

“901번째 밤… 그녀가 말을 멈췄어… 그런데 난 왜… 웃고 있지…?”

간호사들은 숨을 죽였고, 하임은 그의 맥박을 재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건 단순한 약물 중독이 아닙니다.”

간호사 김세나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럼 도대체 뭔가요…? 약도 아니고, 감염도 아니라면…”

윤 과장은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정신 전염…? 아니면… 심리적 중독…? 뭔가 설명이 안 돼요.”

하임은 작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사적 중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도윤이 눈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서사적 중독이요? 그게 정확히 뭔가요?”

하임은 관찰실을 천천히 둘러보며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특정한 이야기 구조 자체가 사람의 심리와 인지에 중독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입니다. 이번 사례는 ‘천일야화’의 누락된 서사, ‘901번째 밤’이 현실의 약물 톡시드와 결합해 중독 유발 서사로 작동한 것일 수 있습니다.”

윤 과장은 여전히 낯선 설명에 당황했지만, 명확한 대안이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강도현이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이번에는 하임을 똑바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당신이… 마지막 이야기꾼이죠…?”

간호사들은 말을 잃었고, 하임은 깊은 불안감을 느꼈다.

마지막 이야기꾼.

그 단어는 과거의 경고 속에서 반복되던 개념이었다.
이제 그것이 현실이 되려 하고 있었다.

하임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결국, 이 밤이 열렸군.”

그리고 그 순간, 병원 내부 호출벨이 다시 울렸다.
또 한 명의 환자가 이송 중이라는 응급콜이었다.

“이번에는 여성 환자입니다. 나이는 19세. 도착까지 2분 남았습니다.”

하임은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 중얼거림 속 ‘셰에라자드’의 이름이 떠올랐다.

‘혹시 이번 환자는…’

그의 뇌리를 스치는 어떤 예감이, 이번 사건이 단순한 확산이 아닌 정해진 이야기의 순서일 수도 있다는 섬뜩한 의심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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