سِجِلّ المائة يوم المَخْفِيّ

금지된 이야기가 깨어났다

응급실 복도 끝, 어두운 조명이 깔린 회의실. 하임과 소수의 의료진이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방금 전, 19세 여성 환자의 도착과 미소 형태의 문양을 본 이후, 하임은 “이건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극비 회의를 소집했다.

문은 철저히 잠겼고, 조명은 낮게 깔려 있었다. 전자기기는 모두 꺼졌으며, 기록은 오직 수기로만 남기기로 했다.

회의에 참석한 인원은 다음과 같았다:

  • 응급의학과 과장 윤정민
  • 레지던트 박도윤
  • 간호사 윤지
  • 중독학과 교수 문태호
  • 정신의학과 교수 이서진

이들은 병원의 공식 회의라인을 거치지 않고 비공식적으로 호출된 이들이었다.

하임은 조용히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그의 손은 떨렸고, 눈은 어딘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예감해 온 사람처럼.

윤정민 과장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하임 박사님, 지금 상황——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하임은 조용히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들었다.

“정신·언어적 감염—— 정확히 말하면 ‘서사적 중독 반응’입니다.”

모두가 낯선 단어에 미간을 찌푸렸다. 문태호 교수가 되물었다.

“서사적 중독이라… 말 그대로 ‘이야기에 중독되는 현상’을 의미합니까?”

하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수년 전, 정부 산하 연구소와 함께 ‘이야기 구조를 활용한 중독 치료’를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실험이 2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몇몇 피실험자들이 특정 서사에 깊이 몰입한 끝에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잃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박도윤이 끼어들었다.

“그 피실험자 중… 실종된 사람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임은 잠시 시선을 피했다.

“네. 19세 여성. 마지막 참가자였죠. ‘901번째 밤’을 반복 중얼거리고, ‘셰에라자드가 사라졌다’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19세 여성 환자—— ‘서린’이라는 이름. 성도 같았습니다. 무언가, 연결이 있다고 봅니다.”

윤지 간호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건 그냥 약물 사건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하임은 조용히 노트를 꺼냈다. 그 위에는 다음과 같은 단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 퍼지는 구조
  • 반복되는 이미지
  • 기억의 퇴색
  • 감정 분리형 웃음
  • 화자 없는 이야기

하임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톡시드는 일종의 촉매일 뿐입니다. 진짜 감염은 ‘이야기’ 자체. 특히,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 ‘901번째 밤’처럼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 서사 구조가 사람들에게 중독을 일으키는 겁니다.”

이서진 정신과 교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현상이라면, 일종의 집단 심리현상으로 설명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단순한 감정 이입이 아닙니다. 이건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구조적으로 설계된 이야기 감염. 마치 AI가 설계한 알고리즘처럼—— 사람들의 무의식을 점점 정해진 구조로 끌고 갑니다.”

그 순간, 정전된 듯한 어둠 속에서 회의실 벽면에 붙은 모니터가 스스로 켜졌다. 모든 장비는 꺼져 있었는데, 누군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하임은 잠시 숨을 멈췄고, 윤정민 과장이 조용히 손을 내리며 모니터 전원을 강제로 차단했다.

“해킹입니까…?”

박도윤이 중얼거렸다.

“그냥 장난이 아닙니다. 이건 ‘이야기’ 자체가 누군가에 의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사태를 ‘이야기의 각성’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건 간호사 윤지였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죠? 우리가 화자가 된다면… 그 순간 우리도 감염되는 것 아닌가요?”

하임은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의 전개’를 분석해야 합니다. 단순한 이야기 소비자가 아니라, 구조를 읽고, 결말을 예측하며, 그 흐름을 ‘탈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순간, 외부 호출벨이 다시 울렸다. 회의실 바깥, 복도를 향해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문을 열며 급히 말했다.

“방금 도착한 서린 환자—— 입술이 움직이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라.’ 그리고 웃었답니다. 분명히 눈은 감고 있었는데… 미소가 움직이고 있었대요.”

하임은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이제… 이야기의 전개는 더 이상 과거의 그림자가 아닙니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현실에서 다시 쓰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 휘말렸습니다.”

그는 조용히 선언했다.

“전면 조사에 들어갑시다. 봉인되었던 실험 자료도 전부 열고, ‘901번째 밤’의 구조를 해체해야 합니다.”

그때였다. 회의실의 전등이 모두 꺼졌다가 다시 켜졌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노트북이 갑자기 자동으로 켜지며, 어디선가 저장되지 않은 파일이 열렸다.

파일 제목: 『1001일차의 마지막 밤 – 설계도』

모두의 숨이 멎었다.

하임은 곧 다가올 무언가를 직감했다.

이야기는 이제, 누군가가 ‘계획한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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